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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어 | 커피 용기의 역사
날짜
2018-06-12 09:4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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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 음용이 언제 시작되었는지는 여전히 확실히 알려진 것이 없으며 앞으로도 명확한 대답이 나오기 어려울 것 같다. 아라비카가 자생하는 에티오피아 지역에 살던 오로모 족이 커피나무의 잎과 꽃과 열매를 사용했다는 것은 알려져 있다. 그들은 이것들을 음료와 음식물로 가공하였고, 열매 일부를 물에 담가 끓이는 형태로 추출했다. 아마도 이것이 15세기 후반 예멘의 수피 신비주의 종파에서 썼던 방식으로 보이는데, 그들은 이를 통해 밤새 잠들지 않고 종교 의식을 다할 수 있었다.

 

커피는 무슬림들의 음료로서 중동에서 태어났다. 그렇다면, 중동이 전세계 커피 문화에 남긴 것은 무엇이었을까? 25 매거진의 4호에서 조나단 모리스는 커피라는 배의 항해 연대기를 통해 우리에게 이야기를 전해 준다.

 

 

커피가 예멘으로 전래된 과정은 상황이 다르다. 페르시아의 물리학자이자 철학자이며 박사였던 이븐 시나(Ibn Sin-a-)는 아비센나(Avicenna)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져 있는데(980-1037), 레바논에 자란다는 '번첨(bunchum)' 이라 는 약용 식물에 대해 기술하였으며, 일부는 이것이 커피라고 믿는다. 그렇지만 그가 표현한 내용은 상당히 포괄적인 것이었고, 그 뒤로 커피에 대해 언급한 내용은 1550년대에 이르러서야 나타났다. 학자 압드 알-카디드 알-자지리(Abd al-Qadir al-Jaziri)가 커피의 아라비아식 표현인 '카화' 를 주제로 글을 썼던 것이다. -자지리는 커피가 아라비아로 처음 넘어온 것은 수피 종파의 승려 무하마드 알-다바니(Muhammed al-Dhabani) (1470 사망) 로 소개했다. 이 승려는 커피를 키시르(qishr)라는, 말린 열매를 에티오피아를 다니면서 접했던 향신료와 함께 끓여 추출한 형태로 사용할 것을 추천했다고 한다.  

 

커피가 본격적으로 음용된 것은 커피 음료가 종교적 의식에서 벗어나 일상 생활로 넘어오면서부터이다. 1511년 이슬람 법정에서는 커피 음용이 종교에 부합한다고 평결했는데, 그 뒤로 커피는 문자 그대로 아라비아 반도, 걸프 만, 홍해로 뻗어나갔고 마침내 1550년에는 오스만 제국의 수도인 이스탄불에 상륙했다. .이때 음료를 추출할 때는 커피콩만 사용하는 경향이 점점 더 많아졌는데, 아마도 커피콩이 수송하기에 더 쉬웠기 때문일 것이다. 이 음료는 아라비아에서 '카화(qahwa)'로 불렸는데, 아라비아에서는 커피를 약하게 볶아서 카다멈 등의 향신료와 섞어 만들어 내었다. 이에 비해 터키의 커피점인 카흐베(kahve)에서는 커피를 강하게 볶았고 음료에는 설탕을 넣었다.

 

이것이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커피 추출과 로스팅 기구에 관한 초창기 모습이다. 추출에 대해서라면, 처음에는 끓이기에 적합한 용기라면 어떤 것이든 사용해서 물과 커피를 원재료로 한 가루를 함께 끓였을 것이다. 이후에 음료를 다른 추출용 용기에 옮겨 향신료를 가했을 것이고, 마침내는 열 보존이 되는 장식 용기에 담아 부어내도록 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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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체즈베(cezve)와 달라(dallah) - 이들은 중동에서 커피를 만들 때 가장 많이 사용되는 두 가지 기구이다. - 를 근본적으로 구별짓는다. 체즈베는 초기 추출 방식용으로 개발된 것으로서, 손잡이가 길어서 사용하는 사람이 화상을 입지 않고 열원에 올렸다가 내렸다가 할 수 있다. 뚜껑이 없기에 압력이 생길 일이 없고, 위쪽이 좁아지는 원뿔형인지라 움직이는 중에 가루가 빠져나오지 않는다. 주둥이가 있어 음료를 다른 용기에 부을 수 있다. 체즈베를 음료 제공용으로 사용할 경우에는 여닫을 수 있는 뚜껑을 덮어 두고는 세공 장식을 해 두는 것이 보통이었다. 이런 것들은 실제로는 그 자체가 커피 제조용으로 쓰이진 않았다.

 

커피를 부어 내는 용도로 아라비아에서 더 많이 사용되었던 것은 달라였다. 달라는 바닥이 평평한 전구 형태인데 가운데 부분은 잘록했다가 다시 위쪽에서는 부풀어 오르는 모습에 맨 위에는 젖힐 수 있는 뚜껑을 달아 두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특징적인 것은 새의 부리를 연상시키는 상당히 큰 주둥이이다. 커피는 이쪽을 통해 부어내도록 되어 있었다. 순수히 커피를 부어내는 용도로 사용하는 달라는 상당한 장식을 넣을 수 있지만 설계 자체는 실용적이다. 바닥이 평평한 전구 형태이기에 내용물이 담기면 그 무게 덕에 사막 모래에서든 장작불 속에서든 안정적으로 설 수 있다. 커다랗게 튀어나온 주둥이 덕에 음료를 부을 때 넘칠 일이 없으며 주둥이는 높이, 형상, 크기 덕에 바닥에 깔린 침전물이 가능한 적게 흘러나올 수 있었다. 요즘 직화식 또는 전기식으로 사용하는 튼튼한 달라 또한 기본 형태는 동일하다.

 

그렇지만, 달라는 시각, 촉각적으로 즐기기 위한 기구이기도 했다. 손잡이는 매력적으로 휘어져 즐거이 잡을 수 있도록 되어 있고 몸체는 감각적인 모습이라 여성을 연상시킨다. 주둥이는 초승달 모양으로 튀어나왔는데 초승달은 바로 이슬람교의 상징이다.

 

부유한 집에서는 부뚜막에 달라 여럿을 줄 지워 놓았었다. 커피를 만드는 데는 한 두어 개만 필요하다는 것은 상관 없었다. 이들은 과시용 물품이었고, 손님에게 알리기 위한 목적성이 있었다.

 

아라비아, 터키, 북아프리카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길쭉하고 주둥이가 날씬한 이브리크 또한 그러하다. 이브리크는 원래 커피를 제공할 때 사용하던 것들인데, 작은 커피잔인 핀잔과 함께 세트로 제조되어 왔다. 이들 용기는 목이 좁고 길쭉한데 이는 쏟아져 버리거나 열에 의해 증발되는 정도를 줄이기 위해서이다. 이쯤 하면 체즈베와 이브리크가 뚜렷이 구별된다는 것을 알아챌 필요가 있다. 이브리크를 체즈베와 같은 뜻으로 사용하는 이유는 단지 유럽인들이 체즈베라고 발음하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형태도 기능도 완전히 다른 두 기구를 통칭하는 용어로 이브리크가 부각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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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팅 쪽에서는, 대개 뚜껑 없는 팬에 커피콩을 넣어 불 위에서 휘저어 볶았다. 화상을 입지 않고 이런 기구들을 다루려면 자연히 손잡이는 길어야 한다. 손잡이에는 금속에 무늬를 세공하곤 했다. 이런 유형의 로스팅 팬에서 주목할 만한 것을 들자면 이러한 손잡이는 접을 수 있고, 그래서 베두인 족이라던지 여행자들이 사막을 건널 때 가지고 다니기 편하게 되어 있다는 것이다. 체즈베 또한 이런 용도로 손잡이를 접을 수 있게 만든 것이 있다. 이와는 달리 오스만 제국 내 대도시에서는 소위 커피 가마를 만들어서 상업용으로 쓴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방식은 커피를 보다 강하게 볶는 데에도 일조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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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와 18세기에 유럽의 커피 메이커들은 근본적으로는 중동에서 흔했던 제조기구와 제법을 따라 했다. 초기 커피점에서는 기다란 목제 손잡이를 한 체즈베 형 커피 메이커가 선반에 진열된 모습이 일반적이었다. 커피를 받는 잔은 자그마했는데 (당시 말로는 이를 '접시' 로 표현했는데 틀린 것이다.) 이는 분명히 핀잔을 따라 한 것이었다.

 

커피를 붓는 용기 상당수도 달라를 따라 한 것이었다. 초기 쓰던 것들은 주둥이가 동일했다. 여기서 처음 벗어난 것이 인퓨전 방식 커피 메이커였는데, 이 기구는 통상의 팬이나 주전자에 물을 따로 데워서는 커피가루가 담긴 본 용기에 붓도록 되어 있었다. 이 또한 달라를 사용해서 아라비아식 커피를 만들던 것과 방식이 같다. 네덜란드의 드뢰펠민나(dröppelminna) 는 아마도 첫 유럽식 커피 메이커일 것인데, 여기에는 달라의 전구식 몸체 형태가 남아 있지만 주둥이를 두는 대신 바닥쪽에 꼭지를 달아 제조된 음료가 빠져 나가도록 했는데, 이 때문에 가루가 꼭지에 엉겨 붙는 문제가 있었다.

 

이 문제는 무슬린을 내부에 덧대어 가루를 잡아 두도록 한 비긴(biggin) 이 개발되면서 해결되었다. 그렇지만 커피를 붓는 용기를 따로 두는 습관은 여전했고, 그 결과 18세기 특유의, 장식이 화려한 도자기 용기가 등장했다. 커피를 담아 내는 데미타세 잔은 명백히 중동의 핀잔을 반영한 것으로서, 현대의 에스프레소 잔의 표준 자리를 지키고 있다.

 

미국의 남북 전쟁 중 북군 병사들이 모닥불에 놓아 만들던 커피는 중동에서 기원한 제법과 기본적으로 동일하다. 19세기 후반이 되어서야 필터, 퍼콜레이터, 가압 추출 기구가 개발되기 시작했고, 이들이 주류가 된 것은, 20세기가 되어서의 일이다. 집에서 뚜껑 없는 팬으로 커피를 볶는 일은 20세기 초까지는 흔했고 이루에야 공장 생산 제품이 주가 되었다.

 

커피산업은 기원인 중동에서부터 기나긴 여정을 지나 왔을 것이다. 커피 제조가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기억하고 이를 이룩해 온 사람들의 천재성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최근 이러한 기법들이 새로이 주목을 받고 있다. 대표적으로 세계 체즈베/이브리크 챔피언십 대회도 개최되고 있다. 이는 이들 옛 커피 제법이 훌륭한 스페셜티 커피 음료를 만드는 데 얼마나 효과적으로 쓰여 왔는지를 보여 준다.

 

원문 : http://www.scanews.coffee/2018/04/16/vessels-ages-25-magazine-issue-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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